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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를 여행 계획을 세우다보면,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란 말을 많이 듣게 된다. 피렌체식 스테이크. 다른 곳에서 먹는 것처럼 100~200g 단위가 아니라 kg단위로 주문을 하게 된다. 

이 지역이 소를 많이 키워서인지 소가죽이 유명하다. 그러다보니 소고기도 많이 나왔을테고, T본 스테이크도 곧잘 즐겼을 것 같다. 이전에 방문했던 다리오 체끼니 아저씨가 소의 다양한 부위를 사용하는 파티를 열었던 이유도 사람들이 모두 T본 스테이크 같은 부위만 좋아하고 비싼 가격에 유통되는데, 다른 부위는 너무 인기가 없어서 이를 이용한 요리를 내려고 했다는 이야기를 봤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만, 우선 가장 중요한건 고기가 유명한 동네에 왔고, 스테이크 자체도 그리 비싸지 않으니 꼭 맛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부모님과 아들과 함께 있다보니, 더더욱 괜찮은 식당에서 괜찮은 스테이크를 먹고 싶었다. 달오스테라는 식당에 사람들이 많이 가는 것 같았는데, 우리 숙소 위치에서 꽤 멀었다. 여행 동선이 꼬일 것 같아서 숙소 근처를 찾다보니, Osteria dell'Enoteca라는 곳이 평이 좋았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정말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던 곳. 인생 맛집이라는 과장된 표현을 하긴 했지만, 이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음식도 맛있었지만, 서비스도 만족스러웠다.

https://goo.gl/maps/hd1noLM7ttSyptE68

 

Osteria dell'Enoteca · Via Romana, 70/r, 50125 Firenze FI, 이탈리아

★★★★★ · 음식점

www.google.com

이날 오전에 다른 레스토랑을 홈페이지에서 예약했더니, 몇 시간 후에 전화가 와서 미안한데, 오늘은 자리가 없단다. dell'Enoteca에 전화해보니, 9시에는 예약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좀 늦긴 했지만, 일단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 가면 될 것 같아서 좋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자리가 없으면 기다리지란 생각으로 8시 반쯤에 일단 레스토랑에 가봤는데, 마침 자리가 있다고 자리 정리할테니 5분만 있다가 와달라고 한다.

30분 일찍 들어간게 기분 좋아서 레스토랑 전체를 찍을 생각도 못 했다. 테이블이 한 6개 정도 있는 작은 레스토랑이였는데, 벽돌과 노란 조명이 아늑한 느낌이 들게 했다. 관광지 식당의 좁은 탁자와 시끌시끌한 분위기 대신 조용하고 깔끔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개략적인 식당 분위기를 볼 수 있는 사진.

일단 메뉴 중에 가장 중요한 비스테카의 가격은 키로당 54유로. 오늘 준비된 고기는 1.2kg 정도라고 했고, 주문하니 조리 전에 가져와서 보여줬다.

다른 음식들의 가격도 꽤 괜찮았다.

메뉴에 와인리스트가 따로 없어서 와인리스트는 없냐고 물어보니, 그냥 직접 같이 가서 보고 고르는게 좋겠다고 했다. 홀 뒤쪽으로 가니, 수퍼마켓에서 주로 음료를 넣어두는 크기의 와인냉장고가 4~5개 정도 있고, 와인이 가득가득 들어 있었다.

다양한 가격대의 와인들이 있었다. 10유로 대에서부터 4~500유로대의 와인까지 다양하게 있었고, 유명한 고급 와인 사시까이아는 2019년 빈이 280유로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행사할 때 35만원정도에 나오니까 여기 레스토랑에서 마시는 가격과 거의 비슷하다.

우리가 주문한 거랑 어울리는 와인을 물어보니, 몇가지 추천을 해줬는데 문득 부르고뉴 스타일의 와인을 좋아하는데 그런 느낌의 이탈리아 와인이 있는지 궁금했다. Podere della Civettaja란 피노누아로 만든 와인을 추천해줬다. 피노누아가 이탈리아에선 피노네로라고.

너무 만족스러운 와인이였다. 가격은 44유로였는데, 은은한 향도 좋았고 피노누아 특유의 살짝 탄산 같이 느껴지는 미네랄도 좋았다. 그리고 은은한 향과 입안에 길게 남는 피니쉬까지. 와인을 좋아하시지 않는 아버지도 이 와인을 마시니 왜 와인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는 줄 알겠다고 하셨다. 

에피타이저로 시킨 테린. 달달하고 향긋한 소스가 너무 잘 어울렸다. 

고기가 나오기 전에 가볍게 마셔보고 싶어서 잔으로 주문한 화이트 와인.

라구소스가 먹고 싶어서 시킨 파스타. 따로 부탁하지 않았는데, 4명이라고 각각 이런 접시에 담에서 서빙해준다. 어쩌면 사소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배려를 보면 참 기분이 좋아진다.

드디어 등장한 스테이크. 꽤 큰 접시에 큼지막하게 썰어진 스테이크. 양이 안 많아보이지만, 생각보다 저 한덩이가 꽤 큰편이다. 숯불에 구워 은은한 불향이 나는 스테이크. 토스카나의 소는 지방이 많지 않아서 이렇게 레어에 가깝게 먹지 않으면 꽤 질겨진다. 고기를 바싹 익히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꽤 맛있다. 잡내 없이 육향이 꽤 진하게 나는데, 거기에 숯향이 더해졌고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가 맛 없기는 힘들다. 게다가 T본 답게 안심과 등심을 다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 이탈리아에서 감자 구이를 빼놓기 아쉽다. 살짝 쫀득하면서 포슬한 느낌. 잘 구운 감자는 항상 맛있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디저트도 주문했다. 식사하는 내내 물이 떨어지지 않게 신경써주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는 등 기본적인 응대지만 괜히 식사 하는 동안 기분 좋게 해준다.

디저트는 티라미수와 그라빠. 그라빠는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를 증류해서 만든 술인데, 40도가 넘는 도수지만 부드럽다. 주로 무색인데, 노란색은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된 거라고 했다. 보드카나 소주 같은 느낌의 투명한 술에서 은은한 와인향이 느껴지는게 식후에 마시기 좋았다. 

이렇게 2시간 정도에 거쳐서 천천히 즐긴 가격은 180유로. 마지막에 그라빠 2잔이 16유로정도 였고, 와인 1잔과 1병이 51유로임을 고려하면, 음식 값은 100유로 내외. 우리 나라에서 비슷한 수준의 레스토랑에서 먹는다면 이 정도 가격에 즐기긴 어려울 것 같았다. 물론 와인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요즘 서울에 꽤 괜찮다는 음식점에서는 10만원 아래의 와인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게다가 10만원 정도의 와인도 이 날 마신 와인에 비하면, 꽤 아쉬운 경우가 대부분일 듯.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접객, 게다가 깔끔하고 조용한 분위기까지 함께 했으니 인생 식사가 될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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